정부 예비비 삭감에 따른 재난 대응 이슈
올해 초대형 산불과 가축 질병 등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예비비가 대폭 삭감돼 대응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특히 국회 예산 과정에서 재해·재난 목적의 예비비가 절반으로 줄면서 산불 복구와 방역 대응 예산이 크게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예비비 축소 배경과 문제점, 향후 필요한 조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비비 삭감으로 인한 재난 대응력 약화
올해 들어 경남과 경북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가의 재난 대응 체계가 큰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특히 초동 진화와 피해 복구, 피해 주민 지원에 쓰이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 재정 운용의 한계가 노출됐습니다. 그 중심에는 예산 편성 과정에서 대폭 삭감된 예비비가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원래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에 총 4조8000억 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했습니다. 이 중 2조6000억 원은 재해·재난 대응 등 특정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목적예비비였고, 2조2000억 원은 그 외 일반예비비였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을 처리하면서 전체 예비비가 절반 수준인 2조400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이 중 목적예비비는 1조6000억 원, 일반예비비는 8000억 원에 불과합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예산총칙상 1조6000억 원 중 1조 원이 고교 무상교육, 3000억 원이 5세 무상교육 등 교육복지 용도로 이미 특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사실상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순수 목적예비비는 3000억 원에 불과한 셈입니다. 산불이나 AI 확산, 구제역 등의 전국적인 재난이 동시에 터질 경우, 정부는 재정 대응 여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는 구조가 됩니다.
기재부는 공식적으로 재난 상황 발생 시 각 부처가 보유한 재해대책비를 우선 사용하고, 부족할 경우 목적예비비, 그 이후에 일반예비비를 사용하는 순서를 따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모든 재원을 합쳐도 대형 재해를 충분히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올해 산림청의 재해대책비는 약 1000억 원인데, 전국적으로 산불 피해 면적이 축구장 1만 2000개에 달하는 현실에서 이 금액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초대형 산불 피해 현실과 예산의 간극
2024년 봄철 들어 연이어 발생한 대형 산불은 그 규모와 피해 수준에서 과거를 훨씬 상회하고 있습니다. 경남, 경북, 강원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번진 이번 산불은 피해 면적 기준으로 이미 2022년과 2023년을 넘어섰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피해 면적은 2022년 전체 산불 피해 면적의 30%에 해당하며, 피해 지역 확산 속도는 예년보다 빠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2년에는 전국적으로 756건의 산불이 발생하여 피해 면적이 2만4797헥타르에 달했고, 피해액은 약 1조3462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산불은 현재 피해 면적만 따져도 7000헥타르 이상으로 추정되며, 앞으로 산불 진화가 지연될 경우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며, 불씨가 전국적으로 번질 위험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산림청이 확보한 재해대책비는 1000억 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는 진화와 복구는 물론이고 피해 주민 지원에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입니다. 진화 장비와 인력, 소방 헬기 운영비, 피해 복구비를 고려하면 최소 수천억 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에서의 예비비 삭감은 재난 대응력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추경을 통해 예비비 증액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예산 심의와 통과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며, 실제 자금 집행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이 공백 기간 동안 국민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당 측은 추경 편성을 통한 예비비 증액 방안을 공식 검토 중이며, 당정협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조정 작업에 나설 예정입니다. 그러나 예비비 증액이 단순히 한 번의 추경으로 끝나선 안 되며, 중장기적인 재정 구조 개편과 함께 ‘재난 대응 예산 우선 배정’이라는 원칙이 정책 전반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축 질병 확산과 살처분 예산의 한계
산불 외에도 현재 정부가 직면한 또 하나의 심각한 재난은 가축 질병의 확산입니다. 특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동시에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방역과 살처분에 필요한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도 살처분 보상 예산은 총 813억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그러나 3월 24일 기준으로 이미 한우 461마리, 산란계 4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으며, 이 같은 속도라면 2022~2023년에 기록했던 661만 마리 수준에 곧 도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만큼 보상과 방역에 필요한 예산은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농가들은 살처분 후 지원금 지급이 지연되거나 일부 금액만 지급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방역 협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부의 신속 대응이 중요한 시점에서 예산의 제약은 치명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예산을 긴급 편성해 대응하고 있지만, 재정 여력이 부족한 군 단위 지역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상황을 버틸 수 없습니다.
AI 확산은 단순히 축산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계란·닭고기·오리고기 등 국민 먹거리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실제로 최근 계란 가격이 급등한 것도 AI로 인한 산란계 살처분이 한몫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러한 가축 전염병의 파급 효과는 물가 상승, 국민 불안,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예산 보강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각 부처의 자체 예산을 먼저 활용하고 부족할 경우 목적예비비, 그다음 일반예비비를 사용하는 원칙을 적용한다고 밝혔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예산 순환의 속도 자체가 늦고 규모도 제한적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살처분 보상 예산을 별도 기금화하거나, 일정 규모 이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추가 예산이 배정되는 재정안정장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올해 초대형 산불과 가축 질병 등 복합재난 속에서 정부의 재정 대응력이 심각하게 시험받고 있습니다. 특히 예비비 삭감으로 인한 대응 한계는 재난 피해를 키우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재정 운용의 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입니다. 예산 구조 전반에 대한 성찰과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댓글
댓글 쓰기